병이 만성화 되는 과정
여러분은 어떤 질병을 경험하셨나요? 저는 5살부터 중학생 때까지 심한 아토피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요. 피부과를 여러 군데 다녀보고, 녹차를 우린 물로도 씻어보고, 등산도 해보고, 성당에 가서 기도도 드리고, 절에도 가보고, 효소찜질도 해봤는데요. 결국 병의 뿌리를 뽑지는 못 했고 더 나빠지지 않는 걸 목표로 치료 받았어요. 그래서 20대 후반인 지금도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악 소리를 지르며 긁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응급실에 갑니다. 그러면 또 아무렇지 않은 듯 병이 사라졌다가 어느날 갑자기, 정말 뜬금 없이 찾아오기를 반복해요.
정신과적 증상도 마찬가지로 괜찮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데요. 의사가 6개월 동안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말했을 때, 처음에는 잘 지키다가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면 약물 복용을 그만두기 쉬워집니다. 의사가 말한 6개월을 모두 채우지 않았지만 '다 나았다'는 느낌이 들면 더이상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괜찮아졌다고 생각해도 의사와 상의를 하고 서서히 양을 줄이거나 치료를 종결하는 것이 정석이에요. 최소 치료 기간을 채우지 않고 임의로 중단했다가 재발하면 치료 기간이 배로 늘어나거든요.
저의 알레르기와 같은 신체 질환을 생각하면 재발했을 때 처치를 하고, 연고를 바르고, 3일~1주일 정도만 약을 먹으면 되는데요. 정신과는 그 기간이 다릅니다. 처음 발병했을 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20살에 발병했을 때 6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받았다 치면요. 그 이후에 재발했을 때 최소 치료 기간이 1년으로, 그 다음 재발에는 2년으로, 그 다음에는 4년, 8년, 심하면 평생으로 점점 더 늘어납니다.
6개월도 긴데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n년 혹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절망스럽고 짜증이 나고 번거롭고 포기하고 싶어지죠. 그리고 정신과는 '이상하다' '미쳤다'라는 편견이 심해서 순탄하게 치료를 받기란 환상에 가깝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치료를 방해하는지 다뤄볼게요!
1️⃣ 가족의 반응
👉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는 가족일 정도로 상처를 주고 받기 쉽죠.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내 가족이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가족은 너무 쉽게 당사자의 병을 부정합니다.
"네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냐?"
"의지가 약해서 그래. 하여튼 별나."
"귀신이 씌였나?"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변했어."
"어디 가서 말하지마, 쪽팔려."
"정신병자인 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누굴 닮아서 저럴까?"
등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그리고 정신과에 가지 못하게 하죠. 경제적인 지원을 끊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약 대신 노력으로 이겨내보라고 설득합니다.
심한 경우 교회, 기도원, 점집, 이단 교회, 깊은 산속에 데리고 가 악귀를 빼내겠다고 굿을 하고, 나무에 묶어 때리고, 영적인 의식을 하죠. '정신을 차릴 때'까지요. 가족으로부터의 낙인과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는 무기력을 학습하고, 증상을 숨기고, 마음의 의지로 이겨내보겠다며 참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고, 그렇게 만성화가 됩니다.
2️⃣ 약물 부작용
👉 약물 부작용은 영어로 'Side effect'라고 합니다. Side에서 볼 수 있듯 '부수적인' 작용을 의미하는데요. 예를들면 변비, 입마름, 손떨림, 경련, 다리 저림, 행동이 느려짐, 기억력 감퇴, 감정의 둔마(저하), 과수면, 소화 불량, 체중 증가 등이 있어요. 옛날에는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해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3️⃣ 술
👉 술과 약을 같이 먹으면 간에 좋지 않고 약의 효과가 덜 작용합니다. 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하거나,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사람이거나, 회식/지인과의 약속 등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경우 약 대신 술을 선택하죠. 그 빈도가 잦으면 치료의 효과는 더뎌져요.
4️⃣ 관리의 어려움
👉 치료 기간이 길다보니 약을 잘 챙겨 먹다가도 의문이 들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고, 효과가 미미하고, 복약 시간을 제때 지키기 어려워 관리에 많은 품이 듭니다.
5️⃣ 추정 진단
👉 엑스레이나 MRI처럼 객관적으로 상태를 측정할 수 없는 유일한 병원은 정신과입니다. 의사가 내리는 진단은 '추정 진단'이라 오진할 수 있고 환자의 반응을 봐 가면서 약을 바꾸기 때문에 정답이 없죠. 환자의 입장에서 '이 의사를 믿어도 되나?' '왜 나는 낫지를 않지?' 같은 생각이 들어 병원을 바꾸거나 아예 정신과를 가지 않으면서 치료를 중단해버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