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에서의 첫 업무는 인사였다.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었다. 나는 상사의 뒤를 따라다니며 한 명 한 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임상심리사, 간호사, 영양사, 보호사, 청소 여사님, 약사, 행정 직원, 의사의 사무실마다 노크를 했다. 나의 상사는 마치 전학생을 소개하는 담임 선생님처럼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로 급히 대화를 끝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터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나오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며 건성으로 “네네, 반가워요.” 하거나, 앉아서 대화하자고 해놓곤 삼십 분이 넘도록 자기 얘기만 하기도 했다. 나의 상사는 익숙하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지만, 원인 제공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가 군인 시절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다른 분들께도 인사를 드려야 해서요.” 상사가 참다못해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상사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병원 복도 끝, 나의 키보다 손바닥으로 세 뼘 정도 더 긴 문이 하나 나왔다. 상사의 엄지손가락으로 지문을 인식하고, 열린 문을 다시 세게 닫고, 긴 복도를 지나면 간호사 사무실이 나왔다. 사무실이라고는 했지만, 보통의 사무실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길고 네모난 책상 위에 CCTV 모니터와 마이크가 있었고, 정면으로 병동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호사가 자기 자리에 앉아 앞을 보면 투명한 플라스틱이 벽처럼 막고 있었고 그 대형 가림막 너머로 환자의 동선이 모두 파악된다. 사무실을 지나면 철문이 한 번 더 나오는데, 그 또한 지문 인식을 해야 열렸다. 문이 2개면 폐쇄병동, 1개만 있으면 반개방병동, 없으면 개방병동이라고 부른다.
“환자와 친해지기. 자기 첫 업무야.”
아직 지문 등록이 되지 않은 나를 위해 상사는 문을 대신 열어 주었다. 그런 다음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하는 일은 이제부터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매일 환자와 놀면서 일단은 친해지라고도 했다. 주위를 빙 둘러보자 TV를 보는 사람들, 모여서 춤추는 사람들, 잠을 자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새로 온 언니야? 잠깐 나 따라와 봐. 내 얘기 좀 들어줘.”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화장실 앞으로 다급하게 데리고 가 이런 말들을 쏘아붙였다.
“있잖아, 나 상담을 받고 싶어. 내가 이런 이야기 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
나는 드라마가 극에 달했을 때처럼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도움을 받고 싶어. 우리 아들이 죽었거든. 첫째 국명이, 셋째 진철이. 그것들이 다 하늘나라에 갔어. 아파서. 그것들 너무 불쌍해. 그리고 키우던 개. 내 키만 한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었는데 걔도 아파서 죽었어. 내가 엄청나게 이뻐했는데 말이야. 내가 고생을 얼마나 무식하게 했는지. 한이 맺혀서 아직도 눈물이 나.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밤 열두 시까지 맨날, 삼십 년도 넘게 식당 일을 했어 내가. 우리 남편은 돈 없다고 지랄,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지랄, 자식새끼 울면 운다고 지랄. 때리고 괴롭히고 툭하면 집 나가고 다른 여자 임신시키고 그랬다? 지금은 죽었어. 내가 그 양반 때문에 못 한 게 몇 개냐….”
자명이라는 이름을 한 그의 머리는 하얗게 희었고 등이 굽어 있었다. 평생 인상만 쓴 사람처럼 미간이 찌푸려진 채 굳어 있어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내 미간도 따라 굳었다.
환자와 친해지라는 상사의 말이 떠올라 더 열심히 자명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소중하게 주워 담았다. 자명은 울분이 얼마나 쌓였는지,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했다.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다, 행복했던 기억에 웃다, 화도 냈다 그리워하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 나한테 비밀 이야기를 해주다니, ‘내 인상이 좀 좋은 편인가? 내가 잘 들어서 그런가?’ 신이 났다. 나는 자명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것이 지금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알고 싶었다.
‘식사하세요!’
저녁 다섯 시가 되어 배식이 시작됐다. 한 명씩 급식 판을 집어 들고 두 줄로 줄을 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하라고 부르시네요. 얼른 가보세요. 저희는 내일 또 만나요. 제가 또 올게요.”
“내일? 몇 시에 올 건데? 정말 또 올 거야? 나, 이렇게 내가 얘기하니까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어. 내일 꼭 와야 해!”
자명은 밥을 받으러 뛰어갔다. 나는 병동에서 나와 사무실로 복귀할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도움이 됐다는 뿌듯감을 첫날부터 느끼다니, 성공적이다.
다음 날 나는 자명에게 줄 활동지를 만들어 갔다. 70년짜리의 스토리를 그래프로 정리할 수 있는 인생 그래프였다. 파일에 활동지 한 장과 백지 한 장을 끼워 폐쇄병동을 향했다. 자명은 어제와 달리 침대에 누워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김자명님! 저 왔어요. 오늘은 뭐 하셨어요?”
자명은 몸을 천천히 일으켜 나를 혐오하듯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저요? 저희 어제 대화했잖아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어제 저기 저 화장실 앞에서, 저한테 비밀 얘기해 주셨잖아요!”
자명의 얼굴에 있는 모든 주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간의 골은 더 깊어져 눈매가 매서웠다. 자명은 침대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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